활동 시작은 예상보다 늦어진 데다가 폭염은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다. 그러나 “연천 임진강 생물권보전지역 생물다양성 탐사단”의 호기심과 열의 또한 예상보다 높았다. 11월 초까지 총 10회 계획된 탐사 활동 가운데 6월의 3회 활동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생물권보전지역”(Biosphere Reserve)은 “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보전 가치가 뛰어난 생태계를 대상으로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지정한 육상, 연안 또는 해양 생태계”를 뜻한다. 1971년 유네스코 ‘인간과 생물권 계획'(MAB, Man and the Biosphere Programme) 총회에서 제안되어 1976년에 처음으로 지정이 시작되었으니 반세기 정도의 꽤 긴 역사를 지닌 프로그램이다.
연천군은 임진강, 한탄강, 차탄천 일부를 핵심지역으로 하여 2019년에 연천군 전역이 “연천 임진강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연천 임진강 생물권보전지역의 강점 가운데 하나는, 2022년 기준 인구의 절반이 넘는 2600만여 명(출처: e-나라지표)이 살고 있는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서울, 경기, 인천은 거의 도시화되어 다양한 생태계가 소실되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따라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생태계와 경관을 수도권에서 한나절의 외출로 만끽할 수 있는 “연천 임진강 생물권보전지역”은, 인구의 절반에 일상적으로 생태계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연천군의 생물다양성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보전하여 지속가능한 이용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새와 생명의 터 연천”이 주관하는 “연천 임진강 생물권보전지역 생물다양성 탐사단”은 유네스코 MAB한국위원회가 후원하는 “2023 생물권보전지역 운영 활성화 공모사업”의 일환이다. 조류를 중심으로 생물다양성을 탐사하며, 세계적인 조류 데이터베이스인 이버드(ebird)를 소개하여 시민과학으로의 성장을 도모하고, 연천 임진강 생물권보전지역의 가치를 인식하고자 한다. 부모와 함께 학생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기에, 지역의 미래 세대 육성과 진로교육에도 일조한다.
그런데 왜 새를 보는가? “새와 생명의 터” 대표 나일 무어스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새는 우리에게 찾아오므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새는 먹이와 서식지 환경에 맞게 다양한 종으로 진화하였기에 새(의 부리와 다리, 발가락 등)를 보면 그 서식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일부 종은 서식지 환경의 건강을 대변하는 지표종이다.”
예를 들어, 봄가을 철새 이동시기에 임진강을 이용하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 호사비오리는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질 만큼 아름다운 새일 뿐 아니라, 서식하는 강이 무척 건강하다는 걸 나타내는 지표종이다. 따라서 호사비오리가 서식하는 강은 많은 생명이 깃드는 건강한 서식지로서 보전 가치가 높다는 걸 뜻하고, 그에 맞는 보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새를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새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새는 멀리 달아날 것이기에 새를 볼 수 없다. 새가 겁을 먹지 않도록 원색과 밝은 색의 차림새는 피하고 어두운 색 또는 내추럴 컬러의 옷을 입는다. 되도록 말을 하지 않거나 필요한 경우 소곤소곤 말한다. 움직일 때는 천천히, 작은 동작으로 움직인다. 세 번의 바이오블리츠 동안 우리는 조금 서툴렀지만 점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익숙해지고 있다.
6월 18일 일요일 첫 번째 활동. 김영걸 카이스트 교수의 꼼꼼한 준비와 차분한 안내로 탐사단은 수월하게 첫걸음을 뗄 수 있었다. 큼지막한 새 그림들을 보며 워밍업을 하고 망원경 초점 맞추기 연습을 했다.
6월 19일 월요일 두 번째 활동. 이정규 생태심리연구소장은 새 이름을 안다는 것이 새를 안다는 것과 같은 뜻은 아니라고 상기시켜 주었다. 새의 생김새를 눈여겨보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기억해 두어야 새를 더 잘 알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멀리 전깃줄에 앉아 있던 파랑새의 붉은 부리와 붉은 입 속, 붉은 발을 눈여겨볼 수 있었다.
6월 25일 일요일 세 번째 활동. 이지원 서울시립대 교수에 앞서 “새와 생명의 터 연천” 백승광 대표의 프리젠테이션으로 우리는 “연천 임진강 생물권보전지역”의 이해에 다가갔다. 이어서 이지원 교수는 지난 두 번의 활동에서 탐사한 조류를 멀티미디어를 통해 되돌아보고, 기록 연습을 하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6월의 폭염 속에서도 탐사단은 왜가리, 중대백로, 비둘기, 깝작도요, 꼬마물떼새, 알락할미새, 검은등할미새, 검은댕기해오라기, 큰부리까마귀, 박새, 딱새, 흰눈썹황금새, 파랑새, 꾀꼬리, 뻐꾸기, 직박구리, 멧비둘기, 방울새, 흰뺨검둥오리, 중대백로, 붉은머리오목눈이, 되지빠귀, 원앙 암컷, 호반새, 청딱따구리 등을 보거나 들었다. 날짜별 이버드 기록은 아래와 같다.
6월 18일 https://ebird.org/guidelines/S141946810
6월 19일 https://ebird.org/guidelines/S142261055
6월 25일 https://ebird.org/guidelines/S142745952
아쉽지만 7, 8월은 휴식을 갖고, 9월에 탐사단 활동이 재개될 것이다. 바뀌는 기류를 타고 새들이 대거 이동하는 시기이다. 연천에 머물던 새들이 떠나기 시작하고, 겨울을 나러 오는 새들이 속속 도착할 것이다. 우리가 새를 보러 멀리 떠나지 않아도, 여기가 적합한 서식지이기만 하다면 새들은 연천을 찾아온다. 조금 더 많은 새를 조금 더 잘 보게 될 즈음, 우리는 새 너머의 것들도 새로이 보게 될 것이다.
MAB한국위원회와 연천군청(특히 관광과 지질생태팀 생물권보전지역 담당자 유미연 박사)의 든든하고도 세밀한 지원과, “새와 생명의 터” 회원들의 성실함과 정성, 그리고 “연천 임진강 생물권보전지역 생물다양성 탐사단”의 열의가 “연천 임진강 생물권보전지역”에 새로운 기류를 일으키고 있다. 그 기류를 타고 “연천 임진강 생물권보전지역”의 가치가 보전, 확산되기를 바란다.